수선

2020. 12. 24. 13:45BLAH BLAH

 

아쉽게도 찢어진 상태를 사진으로 담아두질 못했다. 아무튼 해져버린 반바지를 동네 세탁소에 맡겼다. 해진 부위를 보고선 한 참을 웃는 세탁소 아저씨. 아저씨 실력을 잘 알고 있는지라… 물론 그냥 버려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입었던 옷이지만 수선까지 해서 입으려고 하는 이유는 갑작스레 떠오른 발리에서의 추억 때문이었다. 매년 여름이 오면 커다란 트렁크에서 여름 옷가지들을 꺼내는데 많은 옷들 중에서 요 놈만 보고 있으면 발리에서 지내던 그때가 생각난다.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시간들이라 더욱 소중하고 그립나 보다. 당시 나는 더 이상 까맣게 될 것 같지 않은 피부색에 헐렁이는 보드 숏, 민소매를 입고서 살았다. 무려 18개월 동안 말이다. 일상이라고 해봤자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서핑 스폿에서 서핑을 하는 것이었다. 서핑을 하지 않는 날이면 숙소에서 멀지 않은 짱구(Canngu)에 위치한 조용한 카페나 데우스 매장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이야 힙 한 곳이 넘쳐나지만 당시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더욱 인기가 있었던 곳이다. 관광객들을 피해서 편하게 커피를 마시거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길거리 민소매 20벌을 사고도 남을만한 가격의 반바지와 티셔츠 한 장을 구입했다. 어린아이처럼 반바지와 티셔츠가 든 쇼핑백을 들고 신이 났던 그때. 기념이라도 하듯 사진도 찍고 옷장 가장 깊숙이 넣어두었다. 아끼던 옷은 숙소를 옮기던 중 잃어버렸고 반 바지 하나만 남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발리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오던 날, 넘쳐나는 짐 때문에 버릴 것들을 찾았지만 그때마다 버릴 수 없어 담아왔던 반바지였다. 찢어진 부위를 수선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막상 수선된 걸 보니 앞으로도 최소 5년은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마지막으로 옷을 산 게 언제인지 정말 가물가물, 요즘 다시 병이 도져 발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Deus Ex Machina Bali 매장에서 구입했던 바지.

 

- 다시 떠날 그날을 기약하며

2018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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