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_L U A N G P R A B A N G

2020. 12. 16. 16:44DESTINATION

 

 


어둠이 짙게 깔린 이른 새벽, 창문 틈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든다. '루앙프라방'의 아침은 다른 그 어떤 곳보다도 빠르게 찾아왔다. 루앙프라방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공양 준비로 분주하다. 어느 집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벽 시장은 이미 한창이다. 시장은 공양물을 사러 온 사람들과 신선한 과일, 생선, 육류 등을 팔러 나온 상인들로 활기가 넘친다. 양손 가득 공양물을 구입한 사람들은 행여라도 늦을까 서둘로 걸음을 옮긴다. 씨엥통 사원으로 곧게 뻗은 골목길에 플라스틱 간이 의자와 돗자리가 펼쳐지고 이내 탁밧 의식을 알리는 힘찬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태국에서 탁밧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루앙프라방을 방문한 스님들의 모습

 

 

대로변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현지인들 사이로 낯선 스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탁밧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이웃한 태국에서 오신 스님들이었다. 차가운 어둠 속에서도 정성스레 공양 준비하는 사람들. 스님들 역시 일반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공양물을 준비했다. 탁밧 의식이 시작되기 전, 루앙프라방은 더없이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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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틀 무렵 시작된 루앙프라방의 탁밧

 

 

루앙프라방의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일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여행자들에게는 특별하기만 하다. 쌀쌀한 새벽 공기가 옷깃을 여미고 졸린 잠을 참아본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5시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사원 앞이 부산스러워지더니 이내 스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맨발에 주황색 가사 장삼을 두르고 공양받을 발우통을 어깨에 멘 채 거리로 나선 수행 스님들. 서로 다른 이유로 수행자의 길을 걸으며 의식에 참여하는 스님들. 침묵 속에서 정해진 길을 빠른 속도로 지나쳐간다. 이방인에 불과한 나지만 이 순간만큼은 마음이 숙연해지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심적 파문이 인다. 잔잔하게 울렁이는 파도처럼 내 마음속 무엇인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방석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공양을 시작하는 사람들, 풍족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 내가 지금껏 살아왔던 세상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그런 광경이었다.

 

'탁밧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스님들의 발우통은 단 한순간도 넘치는 법이 없다. 공양물이 모일수록 발우통은 무거워지고 스님들의 어깨는 처져가겠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몇 걸음 떼고 나면 미련 없이 공양물을 배분해 다시금 나누어주었는데 이러한 광경은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내내 반복되었다. 소승 불교를 따르는 라오스의 불교, 그래서 스님들은 중생들에게 목숨을 기대며 살아가는 걸식을 행하여야 하는 것이었다.'

 

탁밧이란, 본디 불교에서 행하는 승려들의 수행 방법 중 하나이며 매일 행해지는 탁밧을 통해 얻은 공양들을 걸식사분한다. 걸식사분이란, 네 등분하여 가난한 중생, 귀신, 동료에게 골고루 나누어준 뒤 마지막 남은 하나를 수행자가 먹는 것을 의미한다. 소승 불교에서는 출가 후 그 어떤 생산 활동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수행자는 하루하루를 탁밧 의식을 통해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고로 탁밧은 곧 아침 공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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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우통은 꽉 차는 법이 없다

 

 

마을 중간 중간에는 고사리처럼 어린 어린이들이 두 손을 모으고 탁밧 행렬을 기다린다. 수행승들은 걷는 속도를 조금 늦추고 보다 많은 공양을 이들에게 내어준다. 아직은 엄마 품이 그리울 아이들이지만 이른 시간 이곳에 앉아 스님들의 주고 가는 공양을 받아가곤 한다. 주홍빛 장삼을 두른 수행스님들 뒤로 루앙프라방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스님들의 표정은 고요하고 움직임은 빠르다. 탁밧 행렬이 큰 대로변을 지나 씨엥통 사원을 향하는 마지막 어귀에 도달했다. 구경하던 여행자와 관광객들은 사라지고 온전히 현지인들만 몇몇 남아 공양을 하고 있다. 수행자의 발걸음은 여전히 거침이 없다. 띄엄띄엄 자리한 동네 주민들, 지나가는 수행승들의 발우통 속으로 조금씩 덜어내 공양을 한다. 모든 수행스님들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하려는 까닭이다. 발우통에는 찹쌀밥, 과일, 과자, 꽃 등이 담겨 있다.

 

 

 

 

백발이 지긋한 할머니와 딸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탁밧 행렬의 마지막에 앉아있다. 수행승과 마찬가지로 맨발 차림이다. 한 자리에 앉아 30여 분 이상을 기다렸을 터인데 힘든 내색 하나 없다.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 근처에 살고 계신 분들인데, 몇 해 전 출가한 손주이자 아들 녀석을 생각하며 아침 공양에 나선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진다. 따뜻한 엄마 품을 떠나 지금 이시간 어디선가 탁밧 의식을 행하고 있을 자식을 떠올리며 공양을 행하는 부모의 마음. 탁밧 공양을 행하는 모든 라오 사람들의 마음이 이와 같을 것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멀리 사라져가는 스님들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자꾸만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돈다. 탁밧 의식을 루앙프라방을 대표하는 볼거리라고, 관광거리로 소개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그럼, 언제부터 탁밧이 관광 상품이 되어버린 걸까? 아마도 대중매체와 1인 미디어가 빠르게 성장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탁밧은 예나 지금이나 루앙프라방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신성한 종교적 의식이었다.

 

사실 지금처럼 루앙프라방이 관광지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여행지에서 관광지로 변모하기 시작하면서 루앙프라방의 탁밧 풍경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탁밧을 기념하는 사진들은 개인 SNS를 타고 빠르게 펴지기 시작했고 상업적인 홍보에만 치중한 일부 미디어들과 상술에 눈이 먼 대형 여행사들의 무분별한 여행 상품도 한몫했다. 탁밧의 본질은 잊은 채 화려한 미사어구와 반복되는 클리셰, 탁밧 행렬의 이미지를 마구마구 써버린 결과 신성한 탁밧 의식이 어느 순간 루앙프라방을 대표하는 관광거리로 전락해버렸다.

 

여행지가 관광지로서 탈바꿈하면 할수록, 유명해지면 질수록, 개념이 없는 여행자들과 저품질의 여행 상품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탁밧 패키지'로 불리는 여행사 상품까지 등장해 나눔과 기부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으며 '동참'이라는 이름 아래 작은 상술까지 더해져 신성한 공물을 판매하는 상인들까지 등장하니 씁쓸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섬광처럼 터지는 플래시, 조용하던 거리는 크고 작은 소리들로 시끄러워진다. 프로, 아마추어 가릴 것 없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기 시작했고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최신 기종의 카메라와 스마트 폰을 손에 쥐고 군중 속으로 난입해 사활을 걸기도 한다. 탁밧 행렬 사이로 끼어들어 사진을 찌고 경건한 마음으로 공양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행동을 서슴치 않고 행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저렴한 패키지를 선택한 단체 여행자들은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가늠하지 못한 채 몰상식한 행동들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수행 행렬 안으로 접근하여 사진을 찍고 또 찍고, 만족스러운 사진이 나왔는지 카메라를 확인하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발길을 돌린다.  모든 패키지 상품과 모든 여행자 그렇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에티켓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일부가 행하는 몰상식한 행동들이 아름다운 도시를 빠르게 망쳐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루앙프라방이 여행사로부터 보호해야 할 여행지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포함되어 있겠지만 무분별하고 개념 없는 여행자들이 망쳐가는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루앙프라방에서 꼭 해보아야 할 것은 탁밧 행렬의 사진을 담는 것이 아니라 수 백 년간 이어온 이들의 나눔 정신을 작은 실천으로 경험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은 아무리 값비싼 카메라나 렌즈를 통해서 얻을 수 없는 참 기쁨일 테니 말이다. 

 

'탁밧은 당신이 이 도시를 찾기 전부터 이들에게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전통이자, 650년 간 끊이지 않고 행해졌던 일상의 의무였습니다. 한번의 추억으로 끝나는 관광거리가 아니랍니다.' 

 

 

 

 

루앙프라방의 아침은 해야 할 일이 무척 많다. 경건한 탁발 의식을 체험했다면 십중팔구 배가 고파온다. 호텔로 돌아가 조식을 먹어도 좋지만 루앙프라방에 왔다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 있으니 쌀국수가 바로 그것이다. 의아해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설명을 조금 더 추가하자면 오전에만 문을 여는 국숫집에서 먹어야 한다. 이른 오전에만 반짝 영업을 하고 제대로 된 간판도 달지 않고 있기에 찾느라 애를 먹기도 하지만 산책을 겸해 국숫집을 찾으러 다니는 재미가 있으니 행여라도 숙소로 발길을 옮기려는 여행자가 있거들랑, 발길을 돌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작성일 2016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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