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판돈_S I P H A N D O N

2020. 12. 16. 18:34DESTINATION

‘4천 개의 섬’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시판돈, 현지 발음에 조금 더 가깝게 표현해 보자면 '씨판돈' 정도. '시(씨)'는 숫자 4를, '판'은 천을, '돈'은 섬을 뜻한다. 메콩 강이 라오스 최남단으로 접어들면 강의 폭은 바다만큼이나 넓어지고 수많은 섬들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섬 중에는 사람이 사는 곳도 있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섬도 있다. 때문에 아주 오래전부터 시판돈은 인도차이나 여행의 숨은 여행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쉬었다 갈 수 있는 천국과도 같은 곳으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이곳을 다녀온 여행자는 그리 많지 않다. 혹시라도 주변에 시판돈을 다녀온 사람이 있거들랑, 분명 그 사람은 여행을 좀 하거나 사연이 있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폭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콘파펭 폭포. 엄청난 수량을 자랑하는 폭포는 캄보디아로 흘러나간다.

 

 

시판돈은 아래로는 캄보디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기에 어떤 이들에게는 라오스 여행의 마지막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라오스 여행의 첫 시작이 되어주기도 한다.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 섬으로는 돈콩(Don Kong*므앙콩), 돈뎃(Don Det), 돈콘(Don Khone) 등이 있으며 각각의 섬이 지닌 특징과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어느 섬으로 향하던 소박한 섬의 일상과 정감 어린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강변에 자리한 방갈로 해먹에 누워 자연이 선물하는 아름다운 섬의 풍경을 감상하며 또 다른 세상을 만나보기 위해 라오스의 최남단, 시판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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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판돈 여행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Vientiane)에서 부터 시작된다. 비엔티안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국내선을 이용해 빡쎄(Pakse)에 도착했다. 빡쎄 공항에 도착하면 시내까지 택시를 타야 하는데, 요금은 정찰제로 8만킵이면 된다. 시내까지의 거리는 약 2, 5km로 약 10분가량이 소요되며 다리 하나를 건너면 된다. 탑승 전에 택시 기사에게 호텔 이름이나 주소를 보여주면 앞까지 데려다주며 숙소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여행자 거리에 내려달라고 하면 된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항공편이 아닌 버스를 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육로를 이용하면 타켁, 사반나케트와 같은 중간 경유지를 들러볼 수도 있고 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진풍경(?)을 구경할 수도 있다.


빡쎄 중심가에 숙소를 잡고 빡쎄 트래블을 찾았다. 반갑게 맞이하는 주인아저씨와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날 돈콩 섬으로 타고 갈 버스를 예약했다. 빡쎄 트래블은 인근에서 가장 큰 여행사다. 서양인이 운영하는 미쓰 노이(Miss Noy)도 평이 좋지만 현지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이런저런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이 빠르다. 시판돈으로 출발하는 버스는 매일 아침 8시에 있고 버스 시간에 맞춰 여행사 앞으로 나가 있으면 된다. 피곤하지 않다면 조금 일찍 일어나 맛 좋기로 유명한 란캄 국수 한 그릇을 먹어두는 것도 좋다. 버스와 더불어 여행자들이 즐겨 이용하는 미니밴도 인기가 높다. 승합차 형태로 운영하는데 10여 명 정도 탑승하고 버스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하고 숙소까지 픽업을 해주기 때문에 조금 더 편리하다. 요금은 버스와 동일하다.

 

 

 

 

 

 

돈콩

 

오전 8시 출발한 버스는 11시가 다 되어서야 반 키낙(Ban Khinak) 인근에 도착했다. 트렁크와 배낭을 내려주고 뿌연 매연을 내뿜으며 사라져버린 버스를 뒤로하고 썽태우가 서 있는 공터로 걸어갔다. 공터 앞에는 작은 상점 하나 그리고 손님을 기다리는 기사와 썽태우만이 덩그러니 서 있다. 새로 생긴 다리 덕분에 보트를 타고 돈콩 섬으로 오가던 풍경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다음 버스에서 내리는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동안 음료라도 마시기로 했다. 식당 안은 선풍기만 요란하게 돌아가고 모두가 취침 모드다. 행여라도 잠든 강아지들이 깰까 조심조심 음료수를 꺼내 목을 추겼다. 점점 더 더워지는 실내 온도, 선풍기를 내 쪽으로 돌리고 싶지만 너무나도 행복하게 잠이 든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자신이 없다.

 

얼마 후 여행자들을 실은 버스가 도착하고 서양 여행자 2명이 내렸다. 썽태우 기사는 출발 신호를 보내고 오래된 차량에 올라 힘겹게 시동을 걸었다. 음료수 값을 테이블 위에 두고 썽태우에 올라탔다. 출발한지 10분, 전원적인 풍경이 시작되는 듯하더니만 금세 숙소 인근에 도착했다. 다른 일행들은 기사가 추천해 준 게스트하우스로, 나는 미리 예약해둔 메콩 인(Mekong Inn)으로 이동했다. 숙소는 선착장과 게스트하우스가 모여있는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인데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 제격이다. 무엇보다 담장에 피어난 꽃들과 야외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잠시 숙소를 둘러보고 2층에 자리한 볕이 잘 드는 방을 골라 짐을 옮겼다. 차를 마시거나 시간을 보내기 좋은 원목 테이블도 있고 햇볕이 잘 들어 빨래를 말리기도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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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풀고 강변 쪽에 자리한 레스토랑에 앉아 점심 메뉴를 골랐다. 숙소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치고는 메뉴가 제법 다양하고 스파게티와 샌드위치 등 가볍게 먹기 좋은 메뉴도 눈에 띄였다. 미트볼 스파게티와 비어 라오 한 병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메콩 강의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를 느껴본다. 마을은 조용하기만 하다.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동네 강아지와 고양이, 그리고 가끔씩 메콩 강을 따라 지나가는 보트 정도다. 구름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메콩 강은 무슨 색인지, 나무 벽을 타고 기어올라가는 개미의 수는 몇 마리인지... 할 일이 없으니 생각하는 것도 1차원 적이다.

 

 

 

 

그러고 보니 라오스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휴식이다. 물론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다. 적어도 저녁을 먹기 전까지는 그간 찍어둔 사진과 원고 정리를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급하게 마신 맥주 때문인지, 그간 피곤했던 몸도 마음도 눈 녹듯 사라지고 갑작스레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메콩 강도, 돈콩 섬도, 라오스 여행도... 모든 것이 완벽하고 사랑스러워졌다. 어느샌가 나타난 고양이 한 마리는 사람의 손길이 그리웠는지 응석을 부린다. 이름 모를 냥이와 함께 옛날 친구 어머니가 해주신 듯한 스파게티와 맥주를 마시며 행복하고 나른한 오후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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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를 빼면 전원이 모두 나가는 시스템이라 방에 들어오면 뜨거운 열기가 가득하고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고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해도 몸이 차가워지기 전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 천장에 달린 선풍기를 향해 얼굴을 드리 밀고 바람을 맞는다. 선풍기가 회전하는 방향을 따라 침대 위를 걷는 모습이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달리 방도도 없고 아무도 볼 사람이 없으니 상관없다. 시원하게 마시려고 냉장고에 넣어둔 음료도 미지근하다. 더욱이 몸은 노곤한데 잠이 오지 않고... 침대 이불을 이리저리 말고 뒹굴뒹굴하다가 결국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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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이 마르기도 전 다시 한번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 선크림을 얼굴과 목, 팔 등에 잔뜩 바르고 먼지를 막아줄 마스크와 모자까지 쓰고 난 뒤 자전거를 빌려 거리로 나섰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마을 길을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이곳저곳을 어슬렁 거려본다. 푹푹 찌는 라오스의 여름 날, 나의 자전거는 돈콩 섬을 가로질러 므앙씽으로 향하고 있다. 물소들은 더위를 견디고자 물웅덩이 안에 몸을 숨기고 고개만 들어 주의를 살피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린지 한 시간 정도가 되어서야 므앙씽 마을에 도달했다. 므앙콩보다 활기가 넘쳐보이는데 나름 상점들도 많고 주변 육지로 오가는 보트들도 눈에 들어왔다. 시원한 음료와 과일 몇 가지를 사 먹고 다시 힘을 내 섬의 남쪽으로 내 달렸다. 메콩 강을 따라 울창하게 뻗은 열대나무들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 가끔씩 오가는 오토바이와 차량들이 내가 본 전부였지만 잠도 않오는 나른한 오후 산책치고는 너무나 완벽했다. 마지막 페달을 힘겹게 밟아 숙소에 도착하니 야외 수영장의 물결이 찰랑찰랑 흔들리고 주인아주머니와 몇몇 직원들이 야외에서 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땀이 마르기 전 재빨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내려와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시원한 물이 몸에 닿으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발끝에서부터 짜릿함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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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놀이까지 하고 나니 배가 고프다. 건강을 생각해 과일 주스와 샌드위치를 시키고 물속으로 깊게 잠수를 해본다. 뜨거운 태양열이 물속으로도 전해지자, 수영장은 따뜻한 온천으로 변하고 있다. 4월 돈콩 섬은 너무나도 한산하다. 하루 종일 여행자는커녕 개미 한 마리 찾기 힘들다. 조금 심심하기는 하지만 덕분에 수영장을 완전히 장악한 채 해가 지고  빨래가 마를 때까지 놀다 돌아올 수 있었다. 돈콩 섬에서의 하루는 무척이나 단조롭다. 알람 따위가 울리지 않아도 자연스레 새벽에 눈이 떠진다. 부스스한 몰골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침을 주문하고 진한 라오 커피 한잔을 마신다. 집에서 마시는 커피와는 분명 뭔가 다른 것이 확실한데 무엇이 다른지는 모르겠다. 함께 온 일행이나 다른 여행자들이 있다면 정답게 이야기라도 나누겠지만 텅 빈 섬 안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는 주인아주머니가 키우는 강아지와 식사 시간에만 나타나는 양이가 유일하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지 플로어(아주머니가 키우는 미니 치와와)는 난리가 났다. 신발을 물어뜯는 것도 모자라 없는 힘으로 자신보다 훨씬 큰 카메라 가방을 끌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라오스에 온 뒤로 동물들과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어딜 가던 이름 모를 강아지,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쉽게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맛좋은 사료라도 준비해 올 걸 그랬다. 오후에는 풀장 안으로 몸을 숨긴 채 더위를 피하고 한낮 더위가 조금 꺾이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어슬렁거린다. 오랜만에 여유가 나쁘지는 않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동네 식당에서 저녁 식사 겸 맥주를 한두 잔 마시고 다음 날 아침 돈콘 섬으로 출발하는 보트를 예약한 뒤, 늦은 밤까지 별 사진을 찍겠다는 신념 하나로 모기와 사투를 벌이며 돈콩 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돈콘

 

 

 

아침부터 기다리던 뚝뚝은 오지 않고 플로어만 내 주변을 맴돈다. 녀석이나 나나 사람이 그립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보트는 인원이 적어 운항을 하지 않는다는 문자 하나가 덜렁 도착했다. 놀랄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돈콘으로 가기 위한 차량이나 보트가 필요했다. 친절한 주인아주머니의 재촉에 마지못해 차에 시동을 건 아저씨, 미국식 픽업 트럭을 타고 돈콘 섬으로 가기 위해 숙소를 출발했다. 반 나카상으로 향하는 길, 아저씨와의 대화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저씨 소개를 조금 하자면, 라오스 출신으로 젊어서는 프랑스 가이드로 이름을 날렸고 지금은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비수기에는 라오스로 돌아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영어와 불어에 능통했고 건장한 체격에 유머도 있다. 아저씨의 유머가 지루해질 무렵 트럭은 반 나카상에 도착했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선착장 매표소로 이동했다. 원래 매표소가 있던 곳은 화재로 인한 복구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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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 인근에는 배낭을 멘 여행자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라오스 남부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빡쎄, 왓 푸(Wat Phu), 볼라벤, 짬빠싹, 콘파펭 등을 둘러보는 다양한 투어를 난생처음 보는 여행자들과 함께 하곤 한다. 대부분은 조금은 서먹하게 헤어지고 마는데 가끔씩은 우연이 이어져 다시 만나기도 한다. 이런 경우라면 서먹함은 금세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구가 되기도 한다. 시판돈은 이러한 여행자들의 마지막 종착지이니, 보트를 기다리거나 섬 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렵지 않게 안면이 있는 여행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간 밀린 안부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여행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기도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선착장에서는 내가 아는 그 어떤 여행자도 만나지를 못 했다. 대신 같은 보트를 타게 된 인연으로 말동무가 된 제임스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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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여행자들은 대체적으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여행의 계급이 있다. 물론 제임스처럼 예외도 있다. 파격적인 드레드 헤어스타일에 온몸을 휘감은 타투와 피어싱, 민 소매 티셔츠에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문구가 적혀져 있고 손목과 발목에는 휘황찬란한 장신구가 감겨 있다. 플리플랍, 일명 쪼리는 색이 바랜지 오래며 뜨거운 태양으로 붉게 그을린 피부는 그간의 여행을 짐작게 해준다.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1리터짜리 생수통은 그 어떤 여행 아이템보다 소중히 생각하는 필수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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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미터 남짓한 로컬 보트에 약 20여 명이 승선했다. 그 누구도 보트의 승선 인원이나 무게를 책정하지 않기에 보통은 강물에 반쯤 잠긴 채 운항한다. 덩치가 큰 몇몇 서양 여행자들 때문에 보트에서 사람이 내릴 때마다 보트는 좌우로 휘청거린다. 머리칼이 날릴 만큼 적당한 강도로 불어오는 강바람과 바람을 맞으며 물살을 가르며 달려가는 보트에 앉아있는 기분은 상상하는 것 보다 상쾌하다. 예전에 시티투어를 하는 2층 버스를 탄 적이 있는데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에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좌로 우로 오가며 난리 블루스를 춘 적이 있다. 그에 비하면 시판돈의 돈콘 섬으로 향하는 이 보트는 무척이나 평화롭고 좌, 우로 펼펴진 풍경이 비슷해 욕심을 낼 필요도 없다. 메콩 강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이 섬들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자들에게 시판돈이란, 분명 매력적인 곳이 아닐 수 없다. 좋아하는 노랫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전해지니 눈과 귀가 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심장 박동은 조금씩 빨라지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느낌이다. 다행히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보트에 탄 모든 이가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이곳에서 평생을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을까?" 침묵을 깨고 제임스가 물었다.
"글쎄, 잠시라면 가능하겠지만 평생은 힘들 것 같아." 라고 그냥 대답했다.

 

 

 

 


엔진 소리가 서서히 작아지고 속력도 줄어들더니만 이내 돈콘 섬 선착장에 도달했다. 경사진 언덕 아래 보트가 멈춰 서자 순서대로 보트에서 짐을 챙겨 언덕을 올랐다. 이윽고 마주한 돈콘 섬. 소박한 마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갈과 군데군데 움푹움푹 파인 땅 주변으로 푸른 나무들과 야생 꽃나무들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똑같은 색상과 크기의 가게 간판들이 길게 늘어져있고 여행자들은 방갈로 해먹과 등받이 쿠션 등에 몸을 맡긴 채 누워있다. 어린아이들은 거리를 놀이터 삼아 뛰어놀고 그 외에 모든 생명체들은 숨죽인 듯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며칠간 체류하게 될 숙소까지는 걸어서 5분 가량이 걸렸다. 메콩 강을 마주하고 있는 작은 정원이 있고 방마다 작은 티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는데 아침저녁으로 커피나 차를 마시기도 좋고 책을 읽거나 망상을 즐기기도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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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콘 섬은 이웃한 돈뎃 섬에 비해 정적이다.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나 레스토랑의 수는 적지만 그만큼 평온하고 조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체력적으로 자신만 있다면,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가능하다.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리피 폭포가 있는 공원이나 민물 돌고래를 관찰하러 다녀올 수도 있고 고무 튜브나 카약을 타고 메콩 강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것도 가능하다. 어두컴컴해지는 저녁이 되기 전까지 각자 하고 싶은 것을 골라 시간을 보내면 된다.

 

 

이라와디 돌고래를 보기 위해서는 돈콘 섬 남단의 반 항 콩 마을에서 출발하는 관찰용 보트를 타야한다. 요금은 7만킵 내외.

 

 

오늘 나의 일과는 돈콘 섬 남부에 위치한 반 항 콘(Ban Hang Khon)지역에 다녀오는 것이다. 반 항 콘 마을에서 보트를 타고 캄보디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관찰 지대로 이동, 민물 돌고래로 알려진 이라와디 돌고래를 관찰하기 위함이다. 얼굴에 선블록을 잔뜩 바르고 카메라를 챙겨 자전거를 타고 내 달렸다. 얇은 두 바퀴가 지날 때마다 엄청난 흙먼지가 휘날렸다. 레이스라도 펼치듯이 경쟁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무리들이 나타나자 나도 모르게 페달을 힘껏 밟으며 함께 라이딩도 즐겼다. 마을에 도착하자 이미 한 무리의 자전거 부대가 진을 치고 있다. 무더운 날씨에 잠시 고민을 하다, 일단 보트를 타고 븐캄 지역으로 돌고래 관찰 투어를 나섰다.

 

 

 

보트를 모는 현지인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 채 시동을 끄고 주변을 살폈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돌고래를 발견하기 위해 숨을 죽인 채 한 껏 몸을 움츠렸다. 천막이 햇볕을 가려 주기는 하지만 보트 안의 열기는 엄청나다. 흐르는 땀을 닦아내랴, 돌고래 출몰을 기다리랴, 정신이 없다.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고 아저씨는 애꿎은 담배만 피우고 있다.

 

 

"이러다 그냥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젠장, 이라와디 돌고래가 뭐라고 이 먼 길을 찾아와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건지..."

 

 

머릿속으로 온갖 후회를 하고 있을 무렵, 담배를 문 채 손짓을 하기 시작한 아저씨,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워낙 짧은 순간 수면 위로 나타나기 때문에 몸 전체를 구분하기는 힘들었지만 분명 이라와디 돌고래였다. 부드러운 몸짓으로 유형을 즐기는 돌고래, 수면 위로 올라오는 이유는 숨을 쉬기 위함이었다. '푸우~'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수면 아래로 사라지곤 하는데 오늘은 운이 좋게도 돌고래 한쌍이 꽤 오랜 시간 동안 보트 주변을 맴돌았다.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라와디 민물 돌고래의 모습

 

 

굉음을 내며 내달리는 보트가 나타날 때마다 돌고래는 더욱 오랜 시간 몸을 감추었다. 돌고래를 관찰하러 찾아오는 이가 많을수록 관찰은 어려워진다. 마을로 돌아가기 전 아저씨는 주변을 조금 더 구경시켜 주었다. 만족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뿌듯한 마음을 담은 채 리피 폭포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착장에서 리피 폭포(솜파밋 폭포 공원)까지는 자전거로 약 25분 정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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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파밋 폭포 공원 안으로 들어오니, 아담한 대나무들이 둥근 아치를 이루며 산책로를 이루고 있고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 리피 폭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폭포는 ‘솜파밋’이라고도 불리지만 라오스 사람들에겐 ‘리피’라는 이름으로 더욱 익숙한 곳이다. 건기에 찾은 리피 폭포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나운 급류는 수 십, 수백 개의 바위와 협곡 틈 사이로 흐르고 있었다. 수위가 높아지는 우기에는 바위들이 물속에 잠기게 된다. 특히 우기에는 물고기를 잡기 위한 대나무 다리가 생겨나는데, 아쉽게도 이번에는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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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폭포수를 따라 나도 하류로 이동했다. 좁은 폭포수들이 한대 모여 그 폭을 넓히는 하류 지역에는 해변이라 불리는 모래톱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물놀이를 하거나 일광욕을 즐기기 좋아 하루 종일 여행자들로 붐비는 곳이다. 다행히 출발 전 수건도 챙겨 온 터라 잠시 물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느라 땀도 흘리고 찝찝했는데 몸을 담궈보니 이처럼 개운할 수가 없다. 더욱이 라오스에서 만나는 해변(?)이라서 그런지 소중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일까? 이후에도 나는 이곳을 매일같이 출근하다시피 했다. 3만5000천킵은 나에게 수영장 입장료이자 프라이빗 해변 사용료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일광욕만 하는 것은 아니다. 뜨거운 태양을 잠시 피해 해변 위에 마련된 방갈로 누워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특히 오후 무렵이 되면 폭포는 황금빛을 내뿜으며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곤 했다.

 

 

 

 

가제보에 앉아 지평선 너머로 저무는 갈무리를 멍하니 바라보다 공원을 나왔다. 점점 더 붉게 변해가는 하늘을 뒤로하고 우정의 다리를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 삐걱대는 방문을 힘차게 열고 닫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에어컨과 선풍기를 최고 강하게 틀어보지만 한번 뜨겁게 달궈진 방안의 열기는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게다가 샤워기를 따라 쏟아지는 물줄기는 온수라고 해도 믿을 만큼 뜨겁다. 좀 전까지 온화하고 평화롭던 마음은 순식간에 짜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더욱이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게 없어서 그런지 배까지 고파 왔다. 다행히 섬 안에 식당은 몇 개 밖에 되지 않고 메뉴도 비슷비슷해서 선택 장애를 겪을 만큼은 아니다. 혼자서 하는 식사가 편하면 손님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도 되고 혼자가 외롭다 싶으면 여행자가 한두 명 정도 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 자전거를 타고 돈뎃 섬으로 넘어갈까도 생각했지만 저녁을 먹고 다시 돌아올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해가 지면 섬은 아주 빠르게 암흑으로 변한다. 숙소나 레스토랑이 있는 곳을 제외하면 길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어두워진다. 앞이 보이지 않아 자전거를 타거나 오토바이를 타기도 힘이 든다. 지난번에 돈뎃 섬에서 늦은 밤 생고생을 한 적이 있는 터라……. 이번에는 그냥 숙소 앞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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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식사는 보통 현지식으로 간단히 먹곤하는데 오늘은 숯불에 구운 각종 BBQ 구이를 맛보기로 했다. 두툼한 닭고기와 야채 등을 꼬치에 꽃아 구워 주는 BBQ 요리는 술안주로 잘 어울리고 밥과 함께 먹기도 좋다. 별다른 양념은 없지만 이상하게 계속 당기는 맛이다. 하루 종일 피곤했던 섬의 하루도 시원한 맥주 거품처럼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빠르게 사라져 간다. 귀에 익은 팝송, 조금씩 취해 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달콤한 망고 디저트까지 다 먹어 치우고 나서야 방에 돌아왔다. 모기장을 치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생각도 잠시 멈춘 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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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갈로에서 제공되는 아침은 보통 바게트와 스크램블, 과일, 커피 정도다. 대충 구운 듯한 바게트는 생각하는 것보다 맛이 좋고 인스턴트 커피는 진하고 달다. 옆 테이블의 여행자는 무슬리(Muesli)를 아예 통으로 가지고 나와 우유에 부어먹고 있다. 열사병이 때문인지, 밤새도록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을 먹는 내내 머리가 띵하다. 작은 수박 한 조각에는 어찌나 씨가 많은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바닥에 버려버렸다. 마땅히 할 일도 없는데 기상 시간은 왜 이리 빠른지, 식사를 마치고 났는데도 아직 7시다. 본격적인 산책에 앞서 널부러진 짐들을 싸고 맡겨놓은 빨래도 찾아왔다. 오늘은 이웃한 돈뎃 섬으로 이동하거나 다른 숙소를 찾아가야 하기에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한 곳에 며칠 머무르다보니 지겨워지기도 하고 돈콘 섬에서의 힐링이 충분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돈뎃

 

 


섬이 뜨거워지기 전 자전거를 타고 돈뎃 섬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계획은 이렇다. 먼저 우정의 다리를 건너 섬의 동쪽을 둘러보며 선착장으로 이동, 일광욕과 튜빙을 즐기고 점심 식사를 한 뒤 서쪽으로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이다. 섬을 둘러보는 동안 숙소도 몇 곳 둘러볼 셈이다. 자전거를 타고 우정의 다리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메콩 강과 섬의 풍경을 잠시 구경했다. 아침부터 강물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이 보이고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현지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평온함 그 자체다. 다리 건너에는 띄엄띄엄 숙소들과 레스토랑들이 이어지지만 특별히 눈길을 끄는 곳은 없다. 이른 시간임에도 섬의 하루는 빠르게 흐르고 있다. 오전에 섬 밖으로 나가려는 여행자들은 배낭과 짐을 메고 선착장으로 이동하고 여행자들 태운 보트들은 연신 섬의 이곳저곳을 오가고 있었다.  

 

 

돈뎃 섬 선착장 인근은 반나카상으로 오가는 보트들과 일광욕을 즐기는 여행자들로 넘쳐난다.

 

 

돈뎃 섬은 시판돈의 섬들 중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돈콘 섬과는 우정의 다리로 연결이 되어 있고 돈콩 섬까지는 보트나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다. 섬의 중심은 북쪽에 자리한 선착장 주변으로 여행자들이 머무는 중저가 숙소들과 레스토랑, 인터넷 카페, 튜브 대여소 등 여행자들을 위한 시설들이 모여 있다. 섬은 크게 해가 뜨는 선라이즈 로드와 해가 지는 선셋 로드로 구분되며 장기로 머물수록 숙박 요금이 저렴한 섬의 서편, 선셋 로드 인근에 머문다.

 

 

0123

 

 

나는 먼저 섬의 동쪽 선라이즈 로드를 따라 자전거를 몰았다. 강변을 따라 자리한 크고 작은 여행자숙소들 안팎으로 집안일을 하는 아낙네들과 보트나 집 등을 수리하는 남성들이 보이고 아이들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로 등교 준비가 한창이다. 햇볕을 막아줄 그늘막이 좁은 골목 하늘을 뒤덮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아침 식사를 하는 여행자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여행자들이 묶는 숙소는 대부분 10불 남짓한 방갈로로 푹 꺼진 매트리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모기장과 천장에 아슬아슬하게 돌아가는 팬 정도가 마련되어 있다. 방갈로는 강변을 마주하고 있기에 거리에는 주로 욕실이 위치한다. 섬의 아침은 언제나 활기차다. 오전에 출발하는 보트를 타야 하기에 이른 아침부터 보트들이 연신 방갈로와 방갈로 사이를 오가며 여행자들을 육지로 실어 나른다.

 

거대한 백팩을 등에 메고 이곳으로 들어왔던 여행자 무리들은 선착장을 기준으로 빠르게 흩어지고 저마다의 길로 사라져버린다. 일정이 짧은 여행자들이 선라이즈 거리를 선호한다면 상대적으로 일정이 긴 배낭여행자들의 경우 선셋 거리로 이동한다. 돈콘 섬으로 들어가던 날 우연히 만난 제임스를 다시 만난 것도 선셋 로드 중간쯤에서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선착장 모래사장에서 시간을 보냈어야 했지만 오전부터 선착장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고 마땅히 자리도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선셋 로드로 가보기로 했다. 대신 출출함도 달랠 겸 인근 레스토랑에 들러 간단히 배를 채웠다.

 

 

 

 

자전거를 타는 일은 즐겁지만 제멋대로 움직이는 안장 때문에 하루 종일 엉덩이가 욱신거린다. 만 킵짜리 대여 자전거라 상태가 좋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유난히도 비포장도로가 많아서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큰 고통이 따른다. 섬의 서편은 과거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가격이나 시설이 별반 다르지 않기에 일부러 숙소를 찾아다닐 필요는 없지만 최근에는 낭만적인 분위기의 숙소들이 많이 생겨났다. 어떻게 알고 이런 곳까지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제임스는 가장 최근에 문을 연 방갈로 발코니에서 기타를 치며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방갈로 앞에는 빨래방과 작은 가게가 있어 무척 편리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즐겨마시는 시원한 캔 커피 두 개를 사가지고 2층 방으로 올라갔다. 방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에 제임스와 주인아주머니는 흔쾌히 방을 보여주었다. 내가 지내는 방갈로보다 시설(에어컨이 없음)은 부족하지만 2층에서 바라보는 메콩 강의 풍경이 무척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거야?"
"책만 다 읽으면 떠나려고..."

 

 

방안에 널브러진 소설책들, 속독으로 읽어도 며칠 아니 한 달을 족히 걸릴 양이었다. 여행을 온 건지 도서관에 온 건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나도 예전에는 여행 중 책을 읽곤 했지만 이처럼 많은 양은 아니었다. 많아야 한두 권 정도, 그것도 지루함을 달래거나 풀 사이드 선 배드에 앉아 잠을 청하는 용도가 대부분이었다. 책들 중에는 사전보다 더 두꺼운 책도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챙겨오기도 하지만 대게는 여행 중 중고책을 사거나 교환한다고 한다. 그동안 꽤나 오랜 시간 여행을 하면서도 '독서의 재미'를 느껴본 적은 고백하건대 별로 없다. 카메라와 스마트 폰이 없으면 왠지 불안했고 책을 읽는 시간보다 메일을 작성하거나 가십거리 뉴스를 읽는 게 더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 앞서 나는 몇 권의 여행 에세이를 읽었다. 대부분은 라오스를 주제로 한 책 들이었는데, 읽으면서 라오스에 대한 나만의 그림을 그렸었다. 글로써 표현된 라오스를 직접 여행하면서 당시의 느낌과 비교하곤 했다. 공감하는 순간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여행을 하면서 라오스를 가슴속에 담았다. 그러고 보니 시판돈은 독서를 하기에 무척 좋은 곳이 아닌가 싶다. 하루 종일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부는 바람을 맞으며 해먹에 누워 책을 읽을 수 있느니 말이다. 더우면 강물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고 배가 고프면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메뉴도 끼니를 해결하면 된다. 머릿속에 잡념들은 사라지고 온전히 책에 빠져들 수 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도서관은 없는 것 같다.

 

 

 

 

제임스와의 이야기는 예상하지 않았던 '여행'과 '독서'라는 주제로 흘러가고 있었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제임스가 찾은 삶의 철학이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동요되고 있었다. 자리를 옮겨 조금 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인근에 머무는 여행자들끼리만 찾는 시크릿 스폿이 있다며 나를 이끌었다. 경사진 언덕을 조금 내려가니 멋진 돈뎃 섬의 풍경을 담고 있는 강가가 나타났다. 어린아이들은 어머니를 따라 빨래를 하기도 하고 한쪽에서 강아지와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이미 물속에 들어간 여행자도 있고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여행자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만 가는 여행자들과 한대 어울려 노랗게 변해가는 일몰을 감상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숙소에 전화를 걸어 연장을 하기로 하고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웃고 떠들며 즐긴 시간, 돌아가야 할 일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약간의 취기를 더하면 지칠지도 않고 두려움도 떨쳐낼 수 있다고 믿었기에 어느 정도 술이 취한 후 돈콘 섬으로 출발했다.

 

 

돈콘섬의 풍경들

 

 

간밤에 어떻게 숙소에 돌아왔는지 잘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게다가 오랜만에 마신 술이라 그런지 머리도 아프고 숙취가 남아있다. 아침 내내 침대 위에서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다가 인스턴트 컵라면으로 해장을 했다. 어제 싸 논 가방에서 옷가지를 꺼내 다시 갈아입고 떠날 채비를 했다. 방값을 내고 난 뒤 빡쎄까지 가는 버스를 예약하고 보트를 기다렸다. 마음 같아서는 며칠 더 있고 싶었지만 매일매일 아까운 시간만 보내는 것 같기도 하고 떠나는 여행자들을 보고 있자니 나만 혼자 남아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혼자 먹는 밥도, 혼자 타는 자전거도 갑자기 지겹게 느껴졌다. 기다리던 보트에서 내린 서양 할아버지는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뜨거운 햇볕에 그을려서 인지 콧등이 벌겋다. 홍조 띤 얼굴의 할아버지 짐 싣는 걸 도와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유쾌한 농담과 액션을 구경하며 반 나카상에 도착했다.

 

 

 

 

반 나카상은 섬으로 들어가려는 여행자와 섬에서 나오는 여행자들이 한 대 어울려 활기가 넘친다. 여행자들을 실은 미니밴과 버스, 뚝뚝이 쉴 새 없이 오가며 매연을 내뿜어댄다. 뜨거운 지열과 매연을 피해 가며 버스 터미널까지 걸었다. 버스 출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많은 여행자들이 버스 터미널로 모여들었다. 이내 배낭여행자들로 가득 찼다.

 

 

반 나카상 버스터미널 풍경

 

 

버스 앞을 서성이던 기사들이 목적지를 외치며 탑승 준비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타켁, 사반나케트를 호명했고 빡쎄와 비엔티안 등이 순서대로 이어졌다. 어린아이 키만 한 배낭에는 운동화, 슬리퍼, 책, 물통 등 그간의 인생 살이가 달려있다. 섬에서 오며 가며 한 번쯤 눈인사나 이야기를 나눈 여행자들이 짧은 조우를 하고 다시금 버스에 올라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9일간의 시판돈 여행을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

 

 

작성일 2016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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