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_K U A L A L U M P U R

2021. 5. 12. 12:20DESTINATION

‘동방의 사도’로 알려진 성 프란시스는 16세기 동남아시아에 가톨릭을 포교하게 되는데 말레이시아는 당시 동서양의 교두보 역할을 하던 중요한 기점이 되어주었다. 네덜란드와 영국의 영향 밑에서 찬란하게 떠오른 말레이시아는 문화의 교착지이자 교집합이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문화와 각기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 '진정한 아시아'라 할 수 있을 만큼 강렬했다. 각기 다른 매력들이 멋진 조화를 이루니 마치 일곱 색깔 무지개를 보는 듯했다. 일부러 흉내 내지 않아도 드러나는 아름다움. 나에게 말레이시아는 비가 내린 뒤 나타나는 무지개 같은 존재였다.

 

2015년 1월 6일 나는 베트남 항공을 이용해 쿠알라룸푸르로 떠나게 되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경유 편을 선택하는 이유는 여행 경비를 아끼기 위함이기도 했고 하노이에서 잠시 쉬었다가 갈 요량이었다. 베트남 항공은 타이 항공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자주 애용하는 알짜배기 항공사 중 하나다. 하노이를 경유하는데 공항 대기 시간도 그리 길지 않고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아 자주 이용하곤 한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그동안 사용하던 카메라 렌즈를 처분하고 새로운 렌즈를 영입했다. 더운 나라에서 렌즈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는 것이 너무 힘들어 내린 결정이다. 결과물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그동안의 고생 같았던 시간을 보상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용산 전자상가에 들러 전시품인 카메라 가방을 아주 저렴하게 업어왔다. 동네 수선집 아저씨께 특별히 부탁해 가방 뒤쪽에 작은 주머니를 달았다. 매번 여행을 하면서 불편했던 몇 가지를 보완해 완성시켰다. 책을 넣고 빼기가 불편하다고 투덜 대기만 했지, 왜 진작에 실행에 옮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새로 탑재한 렌즈와 리폼한 카메라 가방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남은 일은 말레이시아를 멋지게 담아내는 것뿐이다. 요 며칠 비가 내린다는 현지 정보에 궂은 날씨가 이어질까 걱정이 앞섰다. 해외여행의 ‘꽃’이라고 하는 면세품 쇼핑도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긴 일정과 늘어나는 짐으로 인해 행여 수화물 무게라도 넘을까 노심초사하는 실정이라, 흔한 면세점 쇼핑은 오래전 추억이 되어 버렸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그동안의 여행지와는 달리 아웃도어 웨어의 필요성이 감지됐다. 반도를 덮고 있는 국립공원과 보르네오 섬, 코타키나발루 산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상당한 피로를 동반할 테니 말이다. 등산용 긴 바지를 비롯해 가벼운 윈드재킷, 챙이 긴 모자까지 준비를 하고 나니 마치 '아웃도어 마니아'가 된 것 같다. 물론 캐주얼한 의류와 해변에서 입을 비치 웨어도 준비했다. 이렇다 보니 오늘은 멀끔한 캐주얼 차림으로, 내일은 해변의 비치 보이로, 모레는 산악인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할지도 모르겠다. 다채로운 말레이시아만큼이나 여행자의 모습도 변화무쌍해지나 보다. 대합실 의자는 커다란 배낭과 카메라, 모자로 빈 공간이 없다. 두어 시간의 대기 끝에 다시금 베트남 항공에 올랐다. 햇살이 가장 강한 오후라 그런지 비행기는 창문을 열지 못할 만큼 강한 빛이 들어왔다. 시계를 현지 시간으로 2시간 되돌리고 일정을 되뇌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이어나갔다.

 

KLIA국제공항 에어로트레인

현지 시각 오후 7시 50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와 짐을 찾고 나니 벌써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국제공항을 둘러본 후 기차와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KL 센트럴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쿠알라룸푸르의 첫 날밤은 KL 센트럴인근이다. 곧바로 시티 센터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다른 지역으로 오가는 기차와 버스의 스케줄을 알아야 했기에 하루 이틀 정도 센트럴 지역에서 지내기로 했다. 우리로 따지면 서울역이라고 이해하면 간단할 것 같다. 공항과 시내까지 이어주는 공항철도가 이곳에서 출발한다. 뿐만 아니라 시외 지역으로 나가는 경우에도 이곳을 이용하게 된다. 여행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허브 포인트 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보가 부족하다. 대부분이 여행자들이 쿠알라룸푸르 중심으로 이동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짧은 여행 일정일 경우 KL 센트럴은 그냥 공항 철도를 타는 곳 정도로 간주되기 때문이었다.

 

 

 

KL 센트럴역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부킷 빈탕(Bukit Bintang) 지역으로 향했다. 모노레일은 2개의 객량으로 된 지상철인데 구간은 짧지만 쿠알라룸푸르 주요 지역을 통과하기에 여행자에겐 유용한 이동 수단이 되어준다. 게다가 요금도 저렴한 편이라 부담도 없다. 임비역을 지나 부킷 빈탕역에 도착했다. 역 주변은 말 그대로 혼잡 그 자체다. 안 그래도 복잡한 거리에 각종 공사까지 진행되다 보니 정말 난장판이다. 조금만 걸어 다녀도 땀이 흐르는 까닭에 최대한 동선은 짧게, 지하 통로나 지상 통로를 이용해 쇼핑몰로 이동한다. 예를 들면 부킷 빈탕역에서 연결 통로를 따라 랏10 쇼핑몰로 들어간 뒤, 부킷 빈탕 거리를 걷다가 파빌리온으로 진입, BBKLCC워크 웨이를 통해 수리아 KLCC까지 이동하는 식이다. 물론 그 사이 아이쇼핑을 즐기거나 밥을 먹기도 하고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마사지를 받을 수도 있다. 오늘의 첫 번째 일정은 랏10 쇼핑몰 지하에 위치한 푸드 코트에서 맛있는 요리를 맛보는 것이다.

 

더운 날씨 때문에 실내 푸드코트나 야외 호커 센터가 발달한 말레이시아, 퇴근 시간 전까지는 대부분 크고 작은 쇼핑몰 내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한다. 부킷 빈탕에만도 10여 개가 넘는 푸드코트가 자리하고 있다. 여행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형 쇼핑몰 내 유명 체인 브랜드가 있는가하면,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작은 스타일도 있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곳이 바로 랏 10 후통이다.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할 때마다 들러 한 끼 정도는 해결하곤 한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쇼핑몰 지하에 위치한 평범한 식당가쯤으로 여겼다. 여행 말미에서야 이곳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그 후 말 그대로 단골집이 되었다. 방문할 때마다 메뉴는 달라지지만 분위기만큼은 그대로다. 깔끔하고 모던한 스타일의 푸드리퍼블릭이나 라사 푸드와는 달리 현지스러운 분위기가 강하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맛집들은 물론 인테리어까지 잘 꾸며놓아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식당가 이곳저곳을 헤매다 태국식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 앞에 자리를 잡고 매콤한 맛이 가미된 태국식 볶음밥을 주문했다. 특유의 강한 불 맛을 느끼고 나니 달콤한 디저트가 저절로 생각난다. 동남아시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코코아 연유가 듬뿍 들어간 달콤미까지 먹어버렸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 탓에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난다. 이럴 땐 그저 시원한 장소를 찾는 게 상책이다. 인근에서 출발하는 2층 시티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시원한 에어컨과 무선인터넷까지 갖추고 있어 더위로 쫓을 수 있고 여행까지 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망설일 것 없이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버스는 쿠알라룸푸르를 대표하는 23개의 관광명소에 정차한다. 원하는 곳에서 내리고 타면 되는 홉온-옵오프 타입의 버스인데 편안하게 주요 스폿들을 둘러볼 수 있어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2층에 마련된 야외 좌석으로 자리를 잡고 좁은 도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는 버스와 하나가 되어 쿠알라룸푸르를 만끽해본다. 버스는 부킷 빈탕을 출발해 잘란 알로와 창캇 부킷, 차이나타운을 지나 KL 센트럴, 국립박물관, 왕궁, 보태니컬 가든, 국립 모스크, 메르데카 광장, 티티왕사, KLCC, KL 타워 등을 지나는 노선이다.

 

 

인기 스테이션 

1 MTC : 말레이시아 투어리즘 센터로 여행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건축물이다. 무료 전통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2 KL Tower : 동남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통신 타워로 세계에서는 7번째로 높다. 부킷 나나스 언덕에 서 있으며 관람대와 레스토랑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4 KL 컨벤션 센터 & 아쿠아리아 : 쿠알라룸푸르 최대 수족관으로 5,000여 종의 해양 생물들을 한 자리에서 관람할 있으며 KLCC 컨벤션 센터 지하 2층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도 편리하다. 부킷 빈탕 & 창캇 부킷 빈탕 : 늦은 밤 저렴한 가격에 현지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잘란 알로와 창캇 부킷 빈탕으로 이어지는 지역으로 저렴한 숙소와 마사지숍, 레스토랑 등 여행자들을 위한 시설이 있다. 차이나타운 : 거리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상점들과 식당, 노점상들이 빼곡히 모여 있으며 저녁 무렵부터는 포장마차까지 합세해 야시장이 시작된다. 센트럴 마켓과 함께 둘러보면 효과적이다. 12 국립 박물관 : 말레이시아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국립 박물관으로 매일 오전 10시에는 무료 가이드 투어(영어, 중국어, 일본어)가 진행된다. 13 국립 팰리스 : 금빛으로 빛나는 22개의 돔과 넓은 정원, 조각상 등은 이슬람 풍 말레이 모습을 보여준다. 왕궁의 하이라이트는 근위병 교대식(12:00)식이다. 16 국립 모스크 : 이슬라믹 뮤지엄, 쿠알라룸푸르역, 경찰 박물관과 함께 둘러볼 수 있으며 73m의 높이를 자랑하는 첨탑을 비롯하여 사원 내에는 작은 연못과 정원, 분수가 있다. 17 메르데카 광장 : 광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다양한 문화유산을 둘러볼 수 있다. 마스지드 자멕 모스크, KL 시티 갤러리, 빅토리안 분수대, 섬유 박물관,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 등이 자리하고 있다. 23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 451.9m로 쌍둥이 빌딩으로 강철과 유리 소재를 사용한 두 개의 타워(88층)와 스카이브리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KLCC 공원과 수리아 KLCC 쇼핑센터를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메르데카 광장에 내려 옛 도시의 정취를 느껴보기로 했다.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건설되기 전까지 메르데카 광장은 말 그대로 쿠알라룸푸르의 랜드 마크로 명성을 날리던 곳이다. ‘메르데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광장은 말레이시아 독립 선언이 이루어진 의미 있는 장소로 독립 이전에는 로열 셀랑고르 클럽의 크리켓 경기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여행자들이 방문하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100년을 훌쩍 넘긴 과거의 건축물들이 광장 주변에 포진해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당시의 건축미를 뽐내는 다채로운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들은 이제 쿠알라룸푸르를 알리는 중요한 공간으로 탈바꿈해 여행자들을 마주하고 있다. 물론 입장이 제한되어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건물들도 다수 있지만 직접 둘러볼 수 있는 KL 시티 갤러리, 시립극장, 섬유 박물관 등도 있다.

 

'I LOVE YOU KL'이라고 쓰인 오브제 앞에는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잠시 서서 구경을 하다가 KL 시티 갤러리를 관람하기로 했다. 입장료(5RM)는 갤러리 내 기념품 상점이나 스낵 코너에서 현금 대신 사용할 수 있다. 갤러리는 과거 영국 정부 사무실로 사용되던 헤리티지 건축물로 쿠알라룸푸르의 탄생과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갤러리 앞 국기 게양대에는 말레이시아를 구성하고 있는 13개 주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국기는 1947년 개최된 국기 디자인 공모전에서 우승한 모하메드 함자(Mohamed Hamzah)의 작품으로 1957년 8월 31일 독립이 선언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게양되고 있다.

국기 게양대 옆으로는 힘차게 물줄기를 뿜어내는 빅토리안 분수대가 자리하고 있다. 분수대는 1897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하사했지만 여왕이 즉위한 이후인 1904년이 다 되어서야 완공되었다. 110년이 넘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함이 살아있다. 분수대는 3가지 색으로만 만들어졌는데 각각의 색은 하늘과 땅, 나무를 상징한다.

 

 

광장 맞은편으로는 메르데카 광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이 서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는데 길이가 무려 137.2m에 이른다. 건물을 지을 당시 크레인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만을 이용해 만든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무어 양식의 건축물로 중앙에는 쿠알라룸푸르의 ‘빅벤’이라 불리는 41.2m의 시계 타워가 자리하고 있다. 독특한 말굽 형 아치 주랑과 구리를 이용해 만든 돔은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을 더욱 웅장하고 고풍스럽게 만들어 준다. 1897년 영국의 건축가 A.C 노먼(AC Norman)이 지금의 메르데카 광장과 곰바크 강 사이에 설계했고 영국 식민지 시절에는 연방 정부의 행정부 건물로, 현재는 대법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아쉽게도 외부인의 내부 방문은 허락되지 않는다.

 

 

작성일 2016년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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